성인 ADHD를 위해 코칭상담을 시작한 이후로 나이, 직업, 경험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의 다채로운 ADHD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어 학업뿐 아니라 아주 간단한 일상 관리도 안되는 대학생,
지각과 업무 마감을 매번 놓치는 것이 일상인 직장인,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할 일은 더 많지만 정작 아무것도 손을 못대고 있 프리랜서,
아이와 함께 ADHD 진단을 받고 매일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며 우울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등...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ADHD가 생각보다 일상의 아주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칭 세션 중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의 크기와 상관없이 유난히 죄책감을 많이 느끼거나 가혹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모습을 볼 때입니다.
“사람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것 같아요”
“이런 자신이 실망스럽고 한심해요”
“결국은 다 핑계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것 같아요”
무작정 'ADHD 때문입니다'라고 섣불리 결론짓거나, 대책없는 위로를 건내는 대신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그 메시지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린 시절에 누구로부터 어떤 말을 많이 들었나요?”
이렇게 묻는 이유는 어느 환경에서,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으며 자랐는지에 따라 ADHD의 영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실수를 해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주며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의 품에서 자랐다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신선한 접근인데? 넌 정말 특별하구나’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서툰 감정표현에도 불구하고 ‘나랑 같이 놀래?’라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면 아마 일상 한켠으로는 불편하더라도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ADHD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넌 너무 게을러’ ‘너는 좀 이상해’ ‘넌 민폐야’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면, 가족과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비난과 거절, 소외의 경험이 많다면 어떨까요?
타인의 목소리는 어느새 나의 목소리가 되어 스스로를 다그치고 비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발목을 붙잡는 과거의 말 중 하나는 "너 때문에 졌어" 입니다.
초등학교 때 꽤 달리기를 잘했던 저는 학교 대표로 계주대회를 나간 적이 있어요.
당시 두 번째 주자였던 제가 세 번째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줘야 하는 순간 갑자기 출발선에 다음 주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출발선에는 상대방 팀들의 선수들,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섞여있었는데 달리는데만 집중한 나머지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다음 주자를 찾을 수 없었던거죠. 당황스러워 그대로 멈춰 두리번 거리는 사이 저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고 떠나버렸습니다. 출발선이 조금 한가해지자 그제서야 답답하고 화난 표정으로 "여기!!!!!!"라고 소리를 지르며 제게 손을 내밀고 있는 저희팀 선수가 보였어요. 뒤늦게 바톤을 넘겨줬지만 결국 저희팀은 계주에서 꼴등을 하고 말았습니다. 죄책감에 울고 있는 제게 선생님과 친구들이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여 줬지만 다음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같은팀 친구의 말을 엿듣게 되었어요.
"그 동안 매일 죽어라 훈련했는데 걔 때문에 우리팀이 졌어."
그 이후로 저는 '절대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했지만 의도와는 달리 심한 부주의와 기억력 저하로 인해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중요한 약속을 잊고, 때로는 생각 없이 던진 충동적인 말과 행동으로 자꾸만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나는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이 굳은살처럼 마음에 베기게 된것 같습니다. 제가 깨달은 대처방법은 '최대한 나서지 말고 조용히 있자. 가만히 있으면 피해를 끼칠 일도 없다'예요. 그렇게 오랫동안 까치발을 들고 걷듯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혹시 떠오르는 장면이나 말이 있나요?
잠시동안 아래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속으로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 그 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 어린 시절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말, 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인가요?
- 그 말들은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기억나는 경험이 상처 투성이인들 이제와서 과거를 돌이킬 수도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혹시 상처받은 과거가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있는 그 문장은 어디서 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