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대상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보상전략에 대해 의식적으로 자신을 조절하고 억제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지능이나 재능이 있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으며, 자칫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치뤄야 할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고기능 ADHD’라는 말을 들으면 제가 만난 첫 번째 ADHD 내담자가 떠오릅니다. 회계사인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는 꽤 성공한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잘 포장된 모습 뒤에는 남모르는 고통감도 존재했습니다. 업무 중 실수나 오류를 수습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과하게 쓰고 있었으며 업무 이외 일상생활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집안은 엉망진창에 고지서 납부도 밀리기 일쑤였어요. 충동적인 말과 행동, 책임지지 못하는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ADHD가 있다는 것을 절대 모를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멀쩡해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하는 시간 이외에 저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다는 거예요. 마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가짜 명품을 들고 있는 기분이예요, 그래서 누군가 저를 칭찬할 때 가짜임이 들통날까봐 항상 불안해요”
그녀의 가장 큰 고통은 진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해 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용납할 수 없어서 생기는 자괴감이었습니다.
혹시 내 이야기라고 느껴지시나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ADHD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보여지는 모습과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괴리감이 커져 심리적으로 더 혼란스러울 수 있죠. 마치 ADHD를 상대로 달리기를 하듯 조금이라도 앞지르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퍼붓다가 번아웃이 오기도 합니다. 혹시나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까봐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집중을 하다보면 어느새부터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칭찬도 편하게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오랫동안 PR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수 많은 제안서를 작성한 경험이 있어요.
어떤 제안서는 뛰어난 아이디어로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감춰진 사실은 제안서의 양식을 고르는데만 며칠이 걸렸다는 것, 한 장의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남몰래 밤을 새야 했으며, 제출 전 제안서 앞뒤의 서식이 맞지 않고 오타가 많아 사소한 부분을 고치는데 엄청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업한 최종 파일을 제출했는데 그마저 작업중인 파일을 잘못 보내는 실수까지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제 책상에는 곰팡이가 핀 커피잔들과 정리안된 서류들로 가득했고, 미확인된채로 쌓여가는 이메일들이 절 노려보고 있었죠. 자신있어 보이는 모습 뒤에 아주 오랫동안 저는 스스로를 매우 비효율적이고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왔습니다.
마음 속에 ‘더 잘 해야해’ ‘감춰야해’ ‘드러내서는 안돼’로 가득차 있다면 그나마 잘 작동하던 보상 전략도 삐걱거리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 멈추고 내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 혹은 들킬까봐 두려운 부족한 모습에서 잠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압박감, 수치심, 자책감의 안경으로는 내가 채우지 못한 곳만 보이지만 그 안경을 벗으면 그 동안 노력과 시간으로 채워진 모습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고기능 ADHD’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린 이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수고로움과 노력에 따뜻한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다음 뉴스레터에서 만나요! |